햇살 좋은 날

조회 수 237 추천 수 0 2016.06.06 12:42:46
집을 나서는 길은 너무나도 화창했다. 화창하다는 표현을 넘어서 더운 햇빛이 직접 내리쬐는 한여름의 날씨였다.
한낮 기대를 아직 버리지 않은채 태영이와 함께 원자력 병원을 찾았다.
가는길에도 그래도 괜찮겠지?를 수없이 속으로 되뇌였다.
하지만 누워있는 운규형을 바라본 순간, 더이상 어찌해볼수 없은 좌절을 느껴야만 했다.
불과 두달전 같은 위치에서 마주했던 운규형은 이제는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그동안의 모습이 투병으로 살이 쫙 빠져렸지만 밝게 웃은 미소만은 여전했다면
오늘의 모습은 이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말기암환자, 그리고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고 태영이와 나는 할말을 잊었다.

잠시 형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제는 모든것을 내려놓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신듯 했다.
덤덤했던 어머님, 아버님의 모습이 더욱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미리 연락했다면 오지 말라고 했을텐데... 연락을 안하고 찾아간것이 오히려 더 확실한 모습을 보게되는 계기가 된것 같다.

친구가 많아서 많은 힘이 되었다는말,
이런 저런 후회는 없다는 말,
이런게 다 무슨 소용인가...

병원을 나와서 태영이와 점심을 먹는데 누가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소주를 시켰다.
술로 만난 인연도 아니고 지금껏 낮에 마셔본일이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마치 그것도차 마시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는듯이.
정말로 쓰디 쓴 한잔을 마셨다.

언제나 밝게 웃던 형의 모습.
내가 하고 싶은걸 언제나 한발먼저 실행하는 행동력.
누구와도 어울리는 친화력.
내가 가장 닯고 싶어하는, 롤모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 형이, 이제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

햇살 좋은날, 나는 그런 형을 생각하며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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